내 블로그는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자기만족용&회고용 포스팅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혼자 묵묵히 7년간 버티는 와중에 내 감정을 정리하고 소중한 하루하루를 금세 휘발되는 하루로 날려버리기 아쉬워서 시작한 블로그
이번 포스팅은 또 최근 일상과 함께 어떻게 보면 무거운 얘기를 담아볼까 한다
뽀또 맘네 어머니가 베트남에 오시면서 나 먹으라고 복숭아를 3개나 사다주셨다ㅠㅠ
나는 한국의 여름 과일, 포도랑 복숭아를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복숭아는 비싼 항공택배비를 내가면서까지 사 먹을 정도다
이 복숭아 3알은 아끼고 아끼다가 딱복에서 물복이 되기 직전에 다 해치웠다
요즘 점심은 웬만하면 뚜레쥬르에서 샐러드를 사 먹는다
빨리 먹을 수 있고, 속도 가볍고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살면 야채 섭취량이 극악으로 떨어지기에ㅋㅋㅋ
비싼 돈을 내고 굳이 샐러드를 사 먹는 1인 가구,,,,
혼자 가기 애매한 들깨 시래기
반찬이 너무 많이 나와서 뭔가 혼밥 하기 부담스러워서 전남친을 불러내서 같이 먹었다
5년을 사귀고 기념일 직전에 헤어진 전남친은 아직까지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차인 거라 분노와 미련을 삭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많이 내려놨기에 블로그에 쓸 수 있는^.ㅠ
어느 평일 점심에는 코코이찌방야에서 혼밥을 했다
카레는 먹을 때는 진짜 맛있는데 왜케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한지;
반봇록과 반 넘
빈탄까지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식당이 너무 일찍 닫아서 배달로 시켜 먹었다 쏘쏘
이날은 법인장님하고 CFO님하고 같이 점심을 먹었다
남이 사주는 거니까 맘 놓고 먹어야지 회사 근처에 먹을 곳은 많은데도 항상 가던 곳만 가게 되네
다음 날 점심으로 또 샐러드~
이날까지는 참 좋았지, 이번 주도 평탄하게 지나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죽음에 대한 묘사가 있어 보기 싫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난 잠을 진짜 잘 자는 편인데 이날 새벽은 뭔가 이상했다
자꾸 파드득 몸을 떨면서 깨고, 금방 잠이 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잠에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너무 피곤해서 오히려 잠을 못 자는 건가?' 생각을 하면서 뒤척거렸고 아침에 출근도 정상적으로 했다
오전 10시쯤이었다
나는 보통 아침에 출근을 하면 매일 카톡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날도 뽀또 맘에게 카톡을 보내놓고 전날 퇴근하느라 연락이 끊긴 또 다른 친구 A에게 카톡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A와 겹치는 친구인 B에게 연락이 왔다
"A랑 연락했어?"
"아 어제까지 카톡 했고 이제 아침이니까 슬슬하려고, 왜? 무슨 일 있어?"
"통화 가능?"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고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말을 질질 끌었다
"그...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 어떻게 말해야 하지, A한테..."
계속 이러면서 말을 잇지 못하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내가 사무실 밖에서 전화를 받아야 하냐고 물어봤고 결국 사무실 밖에서 통화를 이어갔다
A한테 무슨 사고가 난 것 같아 혹시 지금 바로 와 줄 수 있어?
라는 말에 일단 너 먼저 이동을 하라고 그리고 이동하면서 알려달라고 하고 업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예전에 A가 술 마시고 오토바이 끌고 나오다가 심하게 넘어졌던 일이 생각나서
얘가 또 길에서 다른 차에 박은 건지 싶었다 그래서 그때까지도 부상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줄 알았는데
전화 통화로 유추를 했을 때 더 큰일이 생긴 것 같았다
업무하던 것만 대충 정리를 해놓고 법인장한테 허락을 맡으려고 올라갔고
또 전화를 받았다
"더 이상 말을 돌려서 할 수가 없다, C가 죽었대 영사관으로 가고 있어 영사관으로 와"
C는 A의 하나뿐인 가족이었고 그때 모든 현실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법인장 방 노크를 하고 들어가서 "법인장님, 죄송한데-"라고 하자마자 눈물부터 났다
말도 못 하고 우는 날 보면서 일단 앉으라고 의자를 빼주는 법인장의 당황한 모습에
겨우겨우 말을 이어서 친구가 죽어서 영사관으로 빨리 가봐야겠다고 말을 마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2층 사무실에 들러서 같이 일하던 통역한테만 말을 해놓고 갈 심산으로 통역을 회의실로 불렀고
거기서도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울기만 했다
뚝뚝 끊기는 말을 듣고 안아주면서 일은 걱정 말라고 바로 가방을 챙겨서 건네주던 통역한테 너무 고마웠음
그 뒤로 무슨 정신으로 영사관까지 달려갔는지 모르겠다
운전은 못 할 것 같아서 그랩을 타고 갔는데 지도도 제대로 못 보고 잡아서 미국 영사관에 가지를 않나ㅋ
다시 그랩을 잡아타고 영사관에 도착했다
영사관에 들어서자 어수선한 분위기와 함께 B가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고
그 길로 바로 2층으로 올라가서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A가 눈에 담겼다
주위에는 다른 한국인 두 명이 서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눈을 맞추고 A 이름을 불렀는데
A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나 이제 어떻게 사냐며 울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눈물이 나려다가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위에 서 있던 다른 한국인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야하는데 지금 여권이 없다고, 일단 여권을 찾아서 얼른 가족관계증명서부터 떼야한다는 말에 A한테 정신 차리고 일단 회사에 전화해서 여권부터 돌려받으라고 했다
이미 노동비자 신규 발급을 위해 여권이 에이전시에 넘어가 있었고 여권을 돌려받기를 기다리는 동안 영사관 직원한테 부탁해서 가족관계증명서를 급행으로 떼 달라고 했다
다행히 내가 서류를 쓰는 동안 여권이 영사관으로 도착했고, 가족관계증명서 급행 신청을 하고 경찰 영사를 만나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나랑 친구 B가 멍한 상태로 얘기를 듣는 동안 너무 다행이게도 C의 회사 직원들이 노트를 펴놓고 필기를 해줬다
장례절차에 관한 설명을 듣고,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고 가족관계증명서와 고인 여권을 찾아야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고.
그 와중에 B는 얼굴도 못 봤는데 장례 절차부터 얘기하는 게 맞냐며 그 순간에 정신을 잡고 또박또박 따졌고,
경찰 영사가 5군에 있는 안치소 담당자와 연락을 해준 뒤 얼굴을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얼른 택시를 잡아타고 5군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한편에 안치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워낙 로컬인 탓에 영어도 통하지 않는 터라 내가 통역을 해야만 했다
장례식장을 지나 안치소 앞에 도착하자 다른 이의 시신이 장례식을 위해 옮겨지고 있었고
관리자가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이 맞냐고 했다 사망 당시의 사진이었고...
도저히 볼 수가 없었고 그 순간만큼은 안경을 안 들고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지
관리자가 안치소의 창고 문을 열어주고 그때까지도 아니길 바랐다 뭔가 착오가 있기를 바랐다
A가 얼굴을 확인하고 절규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관리자는 자꾸 나보고 창고 안으로 들어와서 통역을 하라고 윽박을 질렀다
아직 경찰 조사가 진행되는 중이기에 오래 있을 순 없었고 겨우 A를 진정시켜 끌고 나왔다
다시 영사관으로 가서 발급받은 서류를 받고 A를 택시를 태워 보냈다
정말 혼자 보내기 싫었지만 너무 완강하게 혼자 놔둬달라고 해서 그날은 핸드폰 음량을 최대로 키워놓고 밤을 새웠다
혹시나 연락 오면 바로 달려 나가야 하나 싶어서
다행히도 그다음 날부터 신원 확인이 되자 경찰 조사가 재개되었다
우리의 1차 목표는 얼른 C를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거였기에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 했다
다음 날은 다행히 한국에 있던 A의 가족이 베트남에 도착했고, A와 A의 가족을 만나 베트남에서의 장례식을 하는 것으로 설득을 했다
사람을 너무 좋아했고, 아는 사람도 너무 많은 C를 그렇게 외롭게 보낼 수는 없었고
오히려 지금 소문이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려면 하루라도 장례식을 하는 게 낫다고,
그리고 C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기에 소식을 알리는 게 낫다고 최선을 다해 설득했다
그다음 날은 출근을 했다
이전 포스팅에서 썼다시피 나는 수습 기간 1달을 막 지나고 있었고 남들한테 일을 맡기기 어려울 정도로 회사 일이 많았다
밥이라도 먹어야 정신 차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밥도 최선을 다해 먹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다시 A와 연락이 닿았고 이제 막 부검이 끝나고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참고로 이렇게 사고가 일어날 경우, 한인회 재난 상조 위원회에서 장례 준비를 해주는데 무료는 아니다)
한국처럼 3일 동안 장례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조문은 하루만 받기로 했고,
금요일 저녁인데 제시간에 퇴근을 못 하고 밀린 일까지 다 처리하고 나서야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장례식이 채 하루도 안 되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와줬다
당장 사고 직전 날까지도 연락한 지인들이 있었으며, 심지어 한국에서 소식을 듣고 베트남으로 날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전 회사 동료들부터 시작해서 협회 사람들까지 정말 귀한 발걸음을 해주셨고,
각자 자기의 방식대로 애도를 표했으며 더러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황망해한 사람들도 많았다
베트남에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일로 엮이는 것 하나 없이 사적으로 정말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7명도 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C였고, C는 항상 내가 무언가에 대해서 걱정을 할 때 그 걱정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항상 "뫄뫄한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면
"그걸 왜 네가 걱정해? 그건 네 회사가 책임질 일인데, 네가 잘못해도 그 사람들이 너한테 최대로 가할 수 있는 제재가 뭐야? 해고잖아. 그게 다잖아. 해고당한다고 그 일이 네 인생 전체에 영향을 끼치니? 널 망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걱정을 해"라고 그의 방식대로 위로를 해주고는 했다
나는 항상 걱정하고 불안에 떠는 사람이기에 저런 말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구나" 하고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었어
항상 다정했고, 섬세했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자 했으며, 다른 이의 일이라도 자기 일인 것처럼 대가 하나 안 바라고 발 벗고 뛰어다니던 C였기에 이렇게 짧은 기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와주는구나 싶었다
아직도 선하게 웃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못 본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한 번 더 먹고, 커피라도 한 잔 더 마실걸
부디 거기에서는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더 이상 아프지 말고, 건강한 신체로 행복만 하길
남은 사람들이 너무 오래 아파하지 않게 돌봐주길
장례식이 끝나고서는 씻고 옷 갈아입고 혬니랑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다가 문득 이번 연도가 삼재 중에서 제일 빡세다는 날삼재라는 걸 깨달았다
한 10년 전쯤, 삼재였을 때도 날삼재가 유난히 힘들었다
날삼재는 말 그대로 조용히 나가는 게 아니라 "치고 나간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면을 치면서 나가는데 생각해 보니 이번 연도에 악재만 겹쳤다
일단 잘 다니고 있던 회사 급격히 고꾸라지면서 망함, 급여 밀린 것 받느라 한국 왔다 갔다 함, 다녀오자마자 1달도 안 되어서 5년 사귀던 남친이랑 헤어짐, 이직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이직을 못 하며 방황한 것, 친구를 잃은 것.
그리고 마지막 라스트 팡으로 또 힘겹게 적응해가고 있던 회사의 한국 본사에서 나에 대한 채용 취소 소식이 들려왔다
아직 완전한 결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
안 좋은 쪽으로 결정이 날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서 오히려 이상해
그냥 이번 일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내가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인정하니까 앞날에 대한 걱정은 조금 있지만 그래도 당장 스트레스받지는 않는다
벌어질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지
내가 베트남에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남은 삶은 즐겁게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보내야지
다음 주에도 인내하는 힘이 남아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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